시작을 이어나가다.





<시작을 이어나가다>


 


지난주 새 학기가 시작했다. 새롭게 무언가 시작한다는 설렘을 안고 우리는 많은 계획을 세운다. 외국어를 열심히 공부하거나, 다이어트에 성공하겠다는 등 다이어리에 하고 싶은 일들을 하나 하나 채워 나간다


 


우리의 시작은 눈부시게 찬란하다. 플랜을 세울 땐 마치 이것을 다 이룬 듯한 기분이 든다. 하지만 우리는 바쁜 일상 속에서 점점 지쳐가고, 다이어리에 적힌 글들은 핑계라는 지우개로 지워진다. 혹은 결과에 대한 실망감을 stop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원대한 시작의 불씨는 이렇게 조용히 사그라지곤 한다.


 


지난주, 북촌 한옥마을 근처 감고당 길을 지나가던 중 어디선가 나는 달콤한 향에 이끌려 뒤를 돌아봤다. 뽑기 아저씨가 국자에 열심히 설탕을 녹이고 있었다. 학창시절 이후로 오랜만에 만나는 뽑기 아저씨의 모습은 참 반가웠다. 마치 새 학기의 설레지만 낯설기도 한 하교길의 정취가 물씬 풍겼다. 아직은 쌀쌀하지만 봄의 분위기는 완연한 그곳에서 나의 여고시절이 문득 생각났다.


 


18살의 나는 꿈 많은 여고생이었다. 하고 싶은 일이 굉장히 많았다. 외모를 가꾸는 것, 공부하는 것, 노는 것 등 모든 것을 잘하고 싶었다. 그래서 항상 많은 일을 계획했고 실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항상 급했던 것이 문제 아닌 문제였다.


나는 무언가를 실천해 나아갈 때의 중간 지점에서, 스스로가 바라는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곧바로 다른 계획을 세우곤 했다. 이는 비굴함을 덜 느끼기 위한 중도 하차의 또 다른 방법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다이어트를 하던 중 중간 점검의 이면을 발견했다. 다이어트를 시작한 지 두 달 정도 지났을 때, 살은 빠졌지만 내가 원하는 몸매는 아니었다. 잠시동안은 실망스러웠다

. 어쩌면 평생 천재라고 살아온 이가 실은 본인도 평범한 사람임을 깨닫게 되었을 때의 박탈감이라고 하면 어울릴까. 하지만 그 때, 나는 두 달 간의 나의 의지와 노력들을 보게 됐다. 부족한 결과만을 바라보고 스쳐 지나갔던 나의 노력한 시간들이 그제서야 중간이라는 곳에서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동안의 나의 행동과 모습을 스스로가 진정으로 인정하게 된 순간이었다. ‘다 될 거라고 알고 노력했는데 왜 안 돼?’가 아닌 나는 좀 더 노력을 해야 하는 사람이구나를 그제서야 깨닫고 인정했다. 이는 곧 새로운 것을 다시 시작하는 것이 아닌 하던 일의 매듭을 이어 나가는 방법을 알게 했다. 그리고 이것은 내가 생각한 끝 너머의 것을 알게 해 주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 뒤에 나는 내가 원하던 몸과 건강까지 얻을 수 있었다.


그 이후로 나는 무언가를 시작하고 중간 지점에서 그동안의 나의 노력과 행동들을 점검하고 인정하는 습관이 생겼다. 중간 지점에서 스스로에게 내리는 피드백은 마냥 달지 만은 않았다. 그렇지만 이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다시 꾸준히 방향을 찾아 노력한다면 한계를 넘어선 또 다른 성취와 과정 속에서의 행복을 맛볼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게 되었다.


 





어떠한 시작이든 끝은 있다. 하지만 그 끝을 찾아가는 과정은 언제나 완벽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무의식속에서 항상 완벽함을 꿈꾼다. 부족해도 괜찮다. 중간에서 잠시 쉬어 가도 괜찮다. 잠시 풀린 신발끈을 묶고 묵묵히 걸어간다면 어떠한 결과든 그 안에서 스스로 만족할 수 있을 거니까..


계획 앞에 나약해진 나, 혹은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나를 보았다면, 무기력해지지 말자. 겸허히 받아들이고 잘 할 수 있다고 토닥이며 작은 것부터 다시 시작해보자. 차곡차곡 쌓인 당신의 시간은 어느 즈음, 그 자체로 빛나고 있지 않을까.